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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운의 조선 호랑이
    역사에 대해/우리나라 역사 2018. 10. 4.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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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운의 조선 호랑이


    조선과 다리 일본에는 야생 호랑이가 단 한 마리도 살지 않습니다. 일본에는 호랑이 사냥이 무사의 용맹성을 과시할 수 있는 혼치 않는 기회였습니다. 

    선박업으로 엄청난 부를 쌓은 야마모토는 많은 돈을 써서라도 명예나 이름을 드높이고 싶었습니다. 더군다나 알아보니 조선총독부도 최대한 지원한다고 하니, 그는 1917년 11월 19월 도코역을 출발해 딱 한 달동안 150여 명을 동원해 조선 신천을 뒤지면서 떠뜰썩하게 사냥 여행을 다녔습니다.

     이 여행에는 조선의 최고 포수 21며오가 일본인 포수 3명이 가담해 8개 조로 나뉘어 함경남북도와 금강산, 전라남도에서 사냥을 벌였습니다. 


    그가 남긴 사냥 일지를 엮은 책이 '정호기'입니다.

    당시 조선 호랑이 등을 사냥한 정황과 사진을 기록한 수렵지입니다. 그의 호량이 사냥은 조선총독부의 든든한 뒷받침과 해로운 맹수를 퇴치한다는 명분 아래 돈과 권력을 이용해 남의 땅에 와서 야생동물을 싹쓸이한 무용담입니다. 

     제국주의 갑부의 일그러진 욕망과 허영심이 날 것 그대로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최순원과 백운학이 각각 잡은 호랑이, 뒤에 서 있는자가 야마모토다]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의 사냥꾼이 일본인 부자의 하수인이 되어 소중한 동물들을 사냥하는 모습이 안쓰럽습니다. 이어 그들은 함경남도 단천의 호랑이굴에서 두 번째 호랑이를 사살했습니다. 함경남도 영흥에서는 길이 2.1 미터 길이의 표범을 잡았습니다. 특이하게 전남 천태산에서는 호랑이와 표범의 혼혈인 수호라는 맹수가 잡혔습니다. 수호는 100년에 한 마리 나올까 말까 하는 희귀한 동물로, 꼬리가 표범보다 굵고 깁니다. 


    정리하면, 호랑이 2마리, 표범과 수호, 곡 각각 1마리, 멧돼지 3마리, 산양 5마리, 늑대 1마리, 노루 9마리, 다수의 기러기 청둥오리, 꿩이었습니닥. 각 언론은 이번 사냥이 대성공이라고 보도했고, 야마모토는 으스대며 다녔습니다. 야마토는 호랑이 2마리의 고기는 다 먹어치웠으나 가죽 등 다른 잔해는 모교인 도시샤 고등학교에 기증했습니다. 표범 한 마리와 수호도 같이 기증했습니다. 


    1921년 10월 추석을 앞두고 경주 대덕산에서 주민이 호랑이싀 습격을 받았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이 호랑이는 결국 잡혀 죽었고, 이후 지금까지 93년 동안 남한에서 호랑이가 나타난 적은 엇다. 북한에선 지난 1993년 자강도 낭림산에서 호랑이 일가족 3마리가 생포되었죠. 이 가운데 한 마리가 1999년 1월 서울대공원에 기증되었습니다. 


    토종 표범도 1962년 2월 경남 합천에 있는 오도산에서 마지막으로 잡힌 뒤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한반도 남한에서는 한국 호랑이와 표범은 영원히 사라지고 그 공백을 멧돼지가 메꾸게 되었습니다. 일제가 한반도 생태계에 저지른 만행이자 씻지 못할 또 하나의 중대 범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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