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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일혁 경무관
    역사에 대해/우리나라 역사 2018. 10. 19.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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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일혁 경무관


    차일혁 경무관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이 세 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평범한 은행원으로 일하던 그가 독립운동가이자 아나키스트인 김지강(본명 김성수)를 만난 일입니다. 그에게서 조국의 독립과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이 무엇인지를 배운 차일혁은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중국군에 이어 좌익 계열의 독립군인 조선의용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다 해방화 함께 공산주의 이념을 버렸습니다. 


    해방 후 서울로 올라는 그는 영원한 멘토 김지강 선생과 재회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설명과 지시를 받고 다시 총을 들었습니다. 두 번째 변신이였습니다.

     목표는 사이가 시치로였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경기도 경찰부 경부였던 사이가의 악명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20년에 걸쳐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체포하고 고문하고 사형대로 보낸 사이가는 사상경찰의 악마로 불렸고 일제에게는 일 잘하는 형사로 유명했습니다. 그건 그가 1945년 11월 2일 저녁 6시 30분 서울 원남동 자택 근처 우체국 건너편 노상에서 권총 두 발을 맞고 사살되었습니다. 


    역사학자 이문창은 논문에서 차일혁, 김성수, 이규창, 공형기, 네 사람이 사이가를 저격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후속 연구를 통해 네 사람 중 정확하게 총을 쏠 만한 인물은 차일혁 밖에 없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차일혁은 경찰에 투신했습니다. 그의 세 번째 변신입니다. 


    [차일혁]


    그는 빨치산 토벌에 연전연승했습니다. 차일혁 본인이 명사수이자 대포를 잘 다뤘습니다. 차 경무관의 경호원이었던 김규수 참전경찰유공회장은 "차 대장은 조선의용대 시절 팔로군 포병사령관이었던 무정 장군에세 포격술을 배워 박격포를 잘 쐈다. 수십 미터 앞 담배개비를 총탄으로 부러뜨릴 만큼 소총도 명사수였다"고 회고했습니다. 


    부하들과 동고동락하며 솔선수범하는 등 통솔력도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는 빨치산 토벌 과정에서 단순 부역자는 모두 풀어줬고 끝까지 전향하지 않는 빨치산은 전쟁 포로로 대우했습니다. 부대원들에게는 일체의보복 살인도 금했습니다. 


    그는 조금이라도 빨갱이라는 혐의만 있으면  죽이던 다른 지희관과 달리, 붙잡힌 빨치산들을 뜨거운 민족애와 사상 교화로 귀순시켰고, 자신의 부하로 채용했습니다. 이현산을 사살한 부대원 대부분이 귀순한 빨치산 출신인 것만으로도 그의 인격을 짐작할 만합니다. 


    1950년 12월 10일 차일혁은 중국에서의 항일 투쟁 동지였던 최석용 전북지구 전투사령관의 권유에 따라 제18전투경찰 대대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이때부터 차일혁은 부하들과 동고동락하며 당시 지리산을 주무대로 빨치산 투쟁을 지휘하는 이현상과 결전을 벌였습니다. 그는 빨치산과의 전투에서는 용감했지만, 적에게 협조했다는 이유로 양민을 학살하거나 재물을 빼앗는 행위를 엄단했습니다. 


    성질이 불같은 차일혁이 싫어하는 것이 세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회식 때 일본 노래 부르는 것과 적의 목을 따라는 지시, 작전에 지장을 준다고 사찰을 불태우라는 것이였습니다. 훗날 그가 경찰서장을 할 때 기관장들의 회식 자리에서는 차일혁의 성향을 아는 기관장들이 절대 일본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자 차일혁은 충주서장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이어 1년 후에는 충주보다 더 큰 진해경찰서장으로 영전했습니다. 그때부터 차일혁에 대한 투서가 날아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7개월만에 좌천되어 1957년 3월 공주경찰서장으로 발령받습니다. 공주에서 차일혁은 예전과 달리 가족들과 달리 오붓한 시간을 많이 가졌습니다. 

    운명의 1958년 8월 9일 토요일, 공주 금강나루 백사장

    오전 근무를 끝내고 가족들과 함께 물놀이를 나선 차일혁은 아들에게 아버지를 잘 보라고 외치고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음날 수색대원들에게 시신으로 찾게됩니다. 

    서른여덟, 너무나 이른 죽음이였습니다. 


    2011년 경찰청은 차일혁 총경에게 경무관으로 승진 추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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