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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북청년회 의 만행
    역사에 대해/우리나라 역사 2018. 10. 15.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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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북청년회 의 만행


    선우기성이란 사람은 평북 정주 출신으로 서북청년회 창설자이자 중앙집행위원장을 지낸 인물로 백색 테러의 지휘자였습니다. 


    서북청년회는 해방 후 북한에서 공산당에게 탄압을 받았거나 재산을 뺏기고 남한으로 내려온 이북 5도 출신 청년들이 만든 준군사조직이자 반공 단체입니다. 회원은 주로 친일파나 지주, 기독교인, 민족주의자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고향에서 쫓겨나거나 도망쳐 나온 이들은 공산주의자라면 생리적으로 거부감을 갖고 치를 떨었습니다. 남하 후 출신지에 따라 각각 평안청년회, 함북청년회, 황해청년회 등을구성한 뒤 좌익을 쳐부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몰려갔습니다. 

     그들은 늘 극도로 흥분해 있었습니다. 1946년 11월 30일 서울YMCA 강당에서 선우기성을 중앙집행위원자으로 한 서북청년회가 창단하며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런 서북청년회에 은밀하게 접근한 이들이 미 군정과 집권을 노리던 이승만, 그리고 반공을 내세우며 친일 경찰을 비호하던 조병옥 경무부장과 장택상 수도경찰청장이었습니다. 


     [선우기성]


    미 군정과 경찰, 그리고 이승만의 보호와 자금 지원을 받게 된 서북청년회는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이들이 주로 한 일은 경찰이 할 수 없는 거친 폭력이였습니다. 독립운동가 김병길 선생은 서북청년회의 만행을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서북청년회의 만행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극악무도한 것들이었다.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 개와 돼지를 잡아먹었고, 항의하면 장독대 항아리며 집안 집기들을 마구 부쉈다. 어떤 때는 성냥을 확 그어서 초가지붕을 대고 불을 붙여 가옥을 다 불태우기도 했다. 시골 초가라는 게 지붕이 낮아서 손을 뻡으면 닿는 경우가 많았다. 이유도 없었다. 몽둥이로 아무나 패고 부수고 불을 질렀다. 


    서북 청년회원들은 사람을 팰 때 옥상으로 끌고 가서 패면 아무도 모른다고 자랑을 하기도 했다. 당시 옥상이 있는 집은 가장 높은 집이었을 것이고 거기서 패면 소리가 하늘로만 올라간다고 해서 그랬다. 조금이라도 반정부, 반미 시위에 가담한 사람이 있는 집안은 서북청년회 만행의 표적이 되었다. 


    오빠가 독립운돌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집의 여동생들은 서북청년회들이 날마다 찾아가서 성폭력을 동반한 온갖 악행을 다 했다. 어떤 때는 할아버지, 할머니, 며느리, 자식들을 다 잡아다가 옷을 모두 벗겨놓고 할아버지에게 며느리 등을 타고 넘으라고 고문도 가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초주검을 만들었다. 


    그런 고문을 당한 집안 대부분은 양반 가문이었다. 해서 고문을 당한 집안에서는 목을 매고 자살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서북청년회의 만행을 피래 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에 가담하는 이들도 많았다.  "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도 서북청년회원이었습니다. 월남한 안두희가 처음 만난 것을 작은 부락에서 월남민을 심문하던 서북청년회였습니다. 안두희는 서북청년회에 가입해서 김구 암살 계획하던 이승만의 측근들을 알게 됩니다. 결국 안두희는 애국시민 박기서에게 맞아 죽었지만 그의 배후 인물이였던 서북청년회 부단장 김성주의 최후는 더 비참했습니다. 

     김성주는 헌병 사령부에 연행돼 엉뚱하게 국가 반란, 대통령 암살 음모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증거부족으로 혐의가 인정되지 않자 원용덕 헌병사령관은 자기 집 지하실로 끌고가 죽여버렸습니다. 악당들과 악당의 한판 승부인 셈이죠. 


     법과 공권력이 해결할 수 없는 과제를 광기의 폭력으로 수행한 서북청년회, 나치의 돌격대, 이탈리아의 마피아 조직처럼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 나타난 독버섯 같은 존재였습니다. 21세기의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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