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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문화재 수난기
    역사에 대해/우리나라 역사 2018. 10. 1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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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문화재 수난기


    전관용 단편소설 '꺼삐딴 리'에 나오는 소설의 주인공 이인국 박사는 미국을 이민 가기 위해 주한 미 대사관 직원을 찾아 이렇게 고려청자 한 병을 들고 와 뇌물로 바칩니다. 이 대사관 직원은 실존 인물로, 한국에서 두 차례에 걸쳐 7년간 문정관과 정무참사관을 지낸 그레고리 핸더슨입니다. 그는 조각가인 아내 마리아 폰 아그누스와 함께 모든 분야를망라해 중요 문화재를 모았습니다. 하버드대학에 기증한 도자기 150점 말고도 다량의 불화, 불상, 서예, 전적류를 수집했습니다. 도자기는 1년마다 30여 점을 수집했고, 다른 수집품까지 세어보면 이틀에 하나 꼴로 닥치는 대로 모았습니다. 



    이들 부부는 1963년 한국을 떠나면서 외교관의 면책특권을 이용해 어마어마한 문화재를 싸들고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들이 떠나기 1년 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지정 문화재를 해외로 반출하려면 정부에 신고해 허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핸더분 부부는 불법 반출을 한 것입니다. 


    그레고리 헨더슨만 이렇게 우리 문화재를 마구잡이로 불법 반출한 것은 아닙니다. 1970년대 한국에 근무한 스나이더 미국 대사 부부도 한국의 민화를 대량 수집해 미국으로 들고 가버렸습니다. 이들이 한국을 떠넌 무렵 민화 값이 폭등했다는 소문이 무성했습니다. 1980년대 주한 미 대사를 지낸 리처드 워커의 관저 창고에는 한국의 유력 인사들이 뇌물로 바친 우리 문화재가 가득하다는 많은 증언이 나오고 있습니다. 


    조선 말에는 일화천금을 노리는 일본의 무뢰배들이 대거 한반도에 상륙했습니다. 이들 무리 속에는 부산이나 대구 같은 곳에서 가장 먼저 고물상을 차렸던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지상에서 약탈 대상을 찾던 그들은 곧 지하의 고대 분묘에 눈독을 들였습니다. 이리하여 경주와 개성을 중심으로 세계사에 유례없는 극악무도한 고분 도굴이 자행되었습니다. 일본인 도굴꾼은 백주대낮에 우르르 몰려와 버젓이 문화재를 약탈해 갔습니다. 안중근 의사마저 옥중에서 집필한 자서전에서 '일본의 침량이 마침내 우리 선조의 백골에 이르렀다'고 개탄할 정도였습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통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조사된 대한민국 영토 밖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15만 6천여 점에 달합니다. 


    그중 국립도쿄박물관에 1849점, 오사카시립동양도미술관에 1501점, 그 밖에 오구라 컬렉션에 1296점 등 3만 4152점의 소재가 공식 확인되었습니다. 


    이처럼 약탈된 수많은 문화재 가운데 반드시 찾아와야 할 문화재가 두가지 있다면, 바로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규장각 도서가 그것입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일본 덴리대학의 소유가 되어 현재 덴리대학의 중앙도서관에 있습니다. 이 그림은 1939년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중요 문화재는 이토 히로부미가 대출해 간 규장각 도서입니다. 규장각은 1694년 숙종 때 삼청동 입구에 세운 전각으로 역대 왕들의 글과 도서가 보관되어 있던 곳입니다. 1905년 일본 통감부가 설치되면서 규장각 도서는 통감부 수중으로 넘어갔습니다. 이 때 이토가 다량의 도서들을 대출이란 이름으로 빼돌린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외도 수많은 우리 문화재가 현재 국내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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